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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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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사운드 골프] 나는야 감성골퍼!

DATE / 2018.08.06

골프에는 매샷마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는 달성했을 때 오는 성취감은 매우 크다. 그 안에 곧 내 삶이 있고, 무엇이든 대충 하지 않게 된다.


2nd.

처음 골프를 시작한 건 40여년 전이었다. 운동을 좋아해 여러 운동을 했는데 어깨의 경직통이 심했다. 골프를 했던 한 친구가 ‘골프 한 번 해봐라’ 해서 몇 번 쳤는데 그 뒤로 경직통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닌가.

내가 골프를 시작했을 때는 지금보다도 골프라는 운동이 훨씬 더 호사스러운 운동으로 여겨졌지만 나는 약이라 생각하고 골프를 했다.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근육은 평소에 잘 쓰지 않는데다 항상 책상에 엎드려 있는 직업이다 보니 혈행장애가 생겼던 것이 아닌가 싶다. 골프를 하기 전 경직통이 있을 때는 날이 조금만 흐려도 어깨가 굉장히 아팠는데 지금은 깨끗이 없어졌다. 지금도 그 친구에게 참 고맙게 생각한다.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웬 골프?'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골프는 내 작업에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골프는 매 샷, 매 샷마다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원하는 만큼 달성했을 때 거기서 오는 성취감은 매우 크다. 오늘 만족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일, 모레 또 필드에 나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 안에 곧 내 삶이 있기에 일하는 것도 대충 하지 않게 된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감(感)’을 매우 중시하는 편이다. 예전에 나왔던 어떤 드라이버는 양철이 깨지는 것처럼 ‘깡깡’거리는 소리가 나서 사람들이 싫어했다. 그만큼 공이 맞는 소리는 굉장히 중요하다.

야마하 공장에 와서 보니 소리를 만드는 작업 공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야마하는 악기를 만들었던 사람이 클럽을 만든다. 악기를 디자인하는 팀에서 클럽을 디자인하고, 골프를 취미로 하던 사람이 아이언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니 악기를 제조하는 감성과 섬세함이 그대로 골프 클럽에도 녹아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악기를 만드는 작업 공정은 고도의 집중력은 물론 섬세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같은 작업을 수십 년째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업에 관여하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장인인 셈이다. 그런 장인들이 만들어 낸 소리를 골프 클럽에 집어 넣었다고 하니까 믿음이 더 갔다. 


그동안 많은 공장을 다니면서 견학을 해봤지만 악기 공장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견학을 하기 전에는 피아노 같은 건반악기나 관악기는 기계가 거의 만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사람 손이 거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하는 사람들이 일일이 세세하게 감성을 포함시켜 작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오늘 아침 숙소에서 본 잔디 깎는 기계같은 AI의 영역이 인간의 영역을 점점 파고 들고 있어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사람의 손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런 작업 공정이 여전히 중요한 분야를 보니 참 반가웠다. 

이른 아침 잔디 깎는 기계의 움직임 소리에 눈을 떴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본 녀석이다. 이런 녀석들이 인간의 영역을 야곰야곰 파고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앞섰다. 

관악기 공장에서 악기에 광을 내는 작업을 보니까 옛날에 시계 수리를 하던 친구네 집 어르신이 생각났다. 시계 수리도 광을 내는 작업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다. 광을 내는 작업 중에 먼지가 많이 나던데 ‘직원들 복리후생에 신경을 써야겠다’, ‘이렇게 일일이 손으로 하는 작업이라 이 악기들이 비쌀 수 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야마하 창업주 야마하 도라쿠스가 1887년 수리한 오르간. [사진 이지연]



첫 날  악기박물관에 이어 오늘 야마하 공장을 보면서 새삼 '인간이 참 옛날부터 음악을 가까이 두고 생활하려고 애를 썼구나'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야마하의 창업주도 풍금을 고치고 이 회사를 설립한 것이 아닌가. 예전 풍금이야 지금 악기들과 비교하면 간단했겠지만 거기서부터 점점 발전해 이렇게 미세하고 섬세한 공정으로 연결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일이 손으로 작업하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정신이 포함되었기 때문일까. 야마하는 손에 전해지는 손맛이 정말 좋다. 골프는 세게 친다고 공을 멀리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나같이 힘이 많지 않은 사람도 힘을 줘서 세게 치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쳐도 될 수 있어 좋다.



옛날에 타이거 우즈의 인터뷰를 봤는데 우즈도 시합 한 번에 ‘정말 잘 맞았구나’라고 느끼는 샷이 두 번 정도라고 한다. 아마추어들은 한 라운드에 드라이브 샷 세 개 정도, 아이언 샷 세 개 정도가 잘 맞으면 내일 또 골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내가 골프를 좋아하고 도전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