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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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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의 사운드 골프] 에이지슈터와 세인트앤드루스

DATE / 2018.08.06

골프의 마지막 희망은 '에이지슈터'다. 그러나 밥만 먹고 TV만 봐서는 절대 에이지슈터가 될 수 없기에 골프를 즐기면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

38년 동안 골프를 해오면서 골프는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됐다. TV 채널을 늘 골프 방송에 고정시켜두고 프로그램을 보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으면 그 길로 클럽을 들고 휘두르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를 덜 받고 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도 골프 덕분이었다. 한창 골프를 열심히 했을 때는 일도 더 많이 했다. 새벽 3시에 작업실에 나가 오전에 일을 다 끝내놓고 오후에 라운드를 나갔으니 문화생들도 선생이 자리를 비운다고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업무를 마친 뒤 시원한 기분으로 골프를 하고, 라운드 후에 동반자들과 소주 한잔을 기울였던 일은 내 삶에 큰 활력소였다. 책상에만 앉아 만화를 그렸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환장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골프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일도 적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이 너무 맞지 않아서 9홀을 마치면 집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적이 많았다. 그러나 곰곰이 돌이켜 보니 잘 치고 싶으면 연습을 해야 하는데 연습은 하지 않으면서 상황 탓만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38년 동안 한 번도 오랫동안 골프를 쉬지 않은 이유는 골프를 핑계로 운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사진 이지연]



재작년의 목표는 핸디캡 8이었다. 80타는 쳐야 어디 가서도 빠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에서 기를 쓰고 80타를 치려고 노력했다. 물론 목표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잘 치려고 애를 쓴다는 건 그만큼 나에게 욕구가 남아있다는 증거니까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흔 살이 넘으면 먼 산을 바라보면서 카운트다운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데, 아직도 골프 이야기를 들으면 짐을 싸서 쏜살같이 뛰어나간다는 건 아직은 괜찮다는 의미다.

38년 동안 골프를 해오면서 한 번도 오랫동안 클럽을 내려놓은 적이 없는 이유는 연습을 한다는 핑계로 약간의 운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컸다. 밥만 먹고 TV 앞에만 앉아있어서는 절대 몸을 유지할 수 없지 않은가.

요즘 가장 신경 쓰는 건 영감 티를 내지 않는 일이다.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라운드를 하려면 85타 이내로 스코어를 내야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거리도 뒤쳐져서는 버림받기 십상이니 체력과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보다 두 살 많은 한 지인이 있는데 아들이 집이 내려앉을 것 같다고 하소연을 할 만큼 집안에 헬스기구를 들여놓고 체력훈련에 열심이다. 그러나 힘보다 더 중요한 건 아무래도 유연성이라고 생각한다.

다행히 요즘엔 나이와 체력의 핸디캡을 줄여줄 클럽들이 많아졌다. 직접 피팅을 받으면서 내 스윙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니 스윙의 중심이 많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전엔 헤드 스피드나 구질로 클럽을 대강 내 몸에 맞추려 했다면, 구체적으로 스윙 중 샤프트가 휘는 정도를 보고 샤프트와 헤드를 바꿔가면서 클럽을 테스트 해보니 클럽 선택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알게 된 느낌이다. 내 병과 치료법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제 고치는 일만 남은 셈이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드라이버다. 드라이브 샷이 자꾸 우측으로 밀리는 게 골치다. 라운드에 나가보면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가 달라 머릿 속이 혼란스럽다.  그러나 아무리 레슨을 받고 좋은 클럽을 들었다 해도 고친 것을 연습 하지 않는다면 유지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날이 조금만 선선해지면 짐을 싸들고 내 골프의 문제점을 뜯어 고치지 않고서는 안 되겠다. 계속 상황 탓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 생애 최고의 라운드는 8년 전 서원밸리골프장에서 기록한 70타였다. 그 때는 쳤다 하면 페어웨이에 공이 떨어지고, 쳤다 하면 홀에 공이 붙었다. 내 나이 일흔 하나에 요즘 같이 연습을 하지 않고서는 다시 그런 숫자를 스코어카드에 적어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보인다. 대신 내 골프의 마지막 희망으로 내 나이 이하로 스코어를 적어내는 '에이지슈터'가 되고 싶다. 그러나 밥만 먹고 TV만 봐서는 절대 에이지슈터가 될 수 없기에 골프를 즐기면서 몸을 만들어야 한다.

골퍼라면 한 번 가봐야 한다는 ‘골프의 성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도 꼭 한 번 가봐야겠다. 이달 초에 여행 차 영국에 갔다가 바다 건너 실루엣으로만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보고 오자니 온 몸이 근질거렸다. 골프 클럽을 들 힘이 더 떨어지기 전에 올드 코스에 서서 그 옛날 양치기가 된 기분으로 라운드를 즐기고 싶다.